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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en Lawrence

월 초에 런던에 갔을 때 모든 TV와 신문이 Stephen Lawrence 살인사건 재판 기사를 1면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문득 ‘Black Boys on Mopeds’의 Colin Roach를 연상했으나 완전히 다른 건이다. 영국내 인종차별주의의 상징이 된 사건의 재판 결과(19년 전 사건이다) 드디어 백인남성 2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각각 14, 15년 형을 선고 받았다.

우리나라에는 관련기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마침 발견하여 링크한다.

흑인 청년 살해한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남성 2명 19년 만에 ‘단죄’

아직 단죄 받지 않은 나머지 살인자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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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자세한 내용은 위키피디아를 참고.

오늘 들은 음악 몇 가지

오랜만의 화창한 날, 휴가맞이 대청소를 시작했다.
음악이라도 들으며 할까 해서 YouTube의 즐겨찾기를 랜덤으로 재생했는데, 몇 번이나 청소는 잊고 멍하니 음악을 들었다.

Eva Cassidy – My Love is like a Red, Red Rose
스코틀랜드 민요인 이 곡은 십여년 전 ‘당신의 밤과 음악’이란 걸출한 컴필레이션 음반에서 Phil Coulter의 피아노곡으로 처음 접했다.
꽤나 다양한 버젼이 있는데 Phil Coulter의 연주곡을 뛰어넘는 곡은 듣지 못했다. Eva Cassidy의 이 곡을 듣기 전까지는.
아티스트의 죽음이 음악에 과장된 평가를 가져다 주고 이를 이용하는 상술은 흔하지만(특히 젊은 아티스트의 경우) Eva의 목소리는 정말, 정말 놀랍다.
이런 음악이 21세기에 크게 히트하는 것이 더 놀랍긴 하지만.

Adele – Someone Like You
생각해보니 Adele의 곡도 요즘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다.
작년 말 이 곡이 Billboard No.1을 차지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다.

Adele – Someone Like You from AdeleTurkey on Vimeo.(YouTube에선 MV 링크 막혀있음)

Chris de Burge – In Dreams
Roy Orbison의 곡이 오리지널이지만 가사의 애절함의 표현에 있어 Chris de Burgh의 리바이벌이 훨씬 와 닿는다.
언제 들어도 좋은 곡.

The Corrs – Long Night
노래할 때 Andrea Corr의 미모는 유난히 눈부시다. 특히 ‘So Young‘에서.
오늘은 ‘Long Night’을 들었는데, 곡도 좋지만 MV가 정말 근사하다.

그리고…

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 by J.S.Bach for Organ & Guitar
얼핏 생각하기에 오르간에 비해 작은 크기와 음량의 기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앞서 Eva Cassidy 곡과 함께 무한반복한 곡.

추: Randy Vanwarmer 노래를 듣다가 그가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인은 백혈병. 쉰도 안 되었는데, 안타깝다.

크리스마스 쿠키

Kinderkrippe에서 크리스마스 쿠키를 주었다.

맛도 좋지만 모양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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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지평선

깊은 서정성과 박진감을 갖춘 이 책은 소설 읽는 재미를 한가득 준다. 특히 추구해야 할 이상향이란 어떤 곳인가 – 라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유토피아인 ‘샹그릴라Shangri-La’는 몇 가지 면에서 일반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이상향과는 차별화를 두고 있다.

먼저, 중용中庸이 원칙이다. 주인공 콘웨이와 장노인의 이야기를 보자.

…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우리들의 일반적인 신앙은 중용中庸에 있다고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어떠한 지나친 과도함을 피한다는 덕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인 말씀을 용서해주신다면 거기에는 덕德 그 자체의 과도함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적당한 엄격함을 가지고 지배하고 있으며, 그 대신 적당한 복종으로 만족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주민들은 적당하게 성실하고, 적당하게 겸손하고, 적당하게 정직합니다.

보석에 여러 모가 있듯이 많은 종교에는 각기 적당히 진리가 내포되어 있는 법입니다.

무엇보다, 샹그릴라에서 사는 것은 넉넉하고 풍족한 시간이 주어지지만 영원하진 않다는 것.
이들은 이상향에 있어서도 중용을 지키고 있다.

언젠가는 당신도 다른 사람같이 늙는 때가 오겠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늦게 훨씬 고귀한 상태로 들어갈 것이오. 여든 살이 되어도 젊은이의 발걸음으로 고갯길을 오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기적을 행하지는 못하오. 죽음을 정복할 수도 또 노쇠를 막을 수도 없소.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이라고 불리우는 이 짧은 막간의 속도를 늦춘다는 것 뿐.

… 무엇보다 귀중한 것은 ‘시간’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 당신들 서구의 국가들이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상실해 버리는 그 귀중한 보물 말이오. 자, 생각해 보시오. 당신은 독서의 시간을 얻는다 – 이제는 두 번 다시 시간을 아껴 급히 읽지도 않을 뿐더러 지나치게 열중한다고 한 들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니오. 당신은 음악의 취미를 가져서 악보도, 악기도, 자유로운 무한의 시간과 더불어 가장 풍부한 감상을 당신에게 주게끔 갖추어져 있소…

늘 시간에 쫓기는 나로서는, 유한하지만 충분한 양의 시간이 주어지는 이상향에 너무나 공감이 간다.

추:
주인공 콘웨이의 성격은 어딘가 무라카미 하루키 초기작품에 등장하는 ‘나’를 연상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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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ylian ‘La Trufflina’

몇해전 롯데제과에서 인수해서 작은 화제가 되었던 길리안Guylian. 씨쉘Sea Shells이 유명한데, 늘 그랬지만 이거 맛있는 것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얼마전 팀 워크샵에서 선물로 길리안의 ‘La Trufflina’을 받았는데 오, 이건 매우 훌륭하다. 아마존에 가서 보니 가격도 착하고.
몇 개 주문해서 쟁여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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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꽃다발을 받았다.

회사에서 보낸 것인데, 꽤 크다. 꽃송이도 굵고.
아기자기한 맛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깔끔하게 다듬고 묶어 솜씨 좋게 배치해놓았다. 마치 시원시원한 붓놀림으로 순식간에 그려낸 풍경화 같다. 독일인답다는 생각도 든다.

전화를 받고 아래 층에 내려가니 문 밖에 꽃배달을 온 거구의 독일인이 있었다. (직원카드가 없으면 건물 내 들어올 수 없다)
행색은 추레했으나 몸집에 어울릴 정도로 큰 함박웃음을 짓고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사내를 보니 웃음이 슬그머니 나왔다. 그 사내의 웃음도 꽃다발 만큼이나 보기 좋다.

꽃을 아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던 일에서 잠시 눈을 떼어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여유’를 준다는 점은 맘에 든다.
며칠은 눈과 코가 작은 호사를 할 듯 하다.

단상斷想

아침에 빵 사러 집앞을 나섰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바삐 차를 몰며 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동네가 작다 보니 무척 차가 커보였다. 문득, 사람 하나 움직이는데 저 거대한 쇳덩어리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비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솔린 엔진은 25%, 디젤은 35%의 열효율 – 나머지는 운동에너지로 바뀌지도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비효율적인 장치가 바로 자동차인데… 그러고 보니 747은 17만리터의 연료를 싣고 다닌다던데, 상층 대류권에 그런 제트엔진 공해를 뿌려 대는 것이 정말 맞는건가 싶기도 하고.

두서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빵집 앞에서야 그쳤다.
요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어서 그런지 이런 저런 생각이 많다.

BierBike – 민폐와 웃음을 함께 주는


팀 행사로 Bier-Bike를 타기로 했다. 맥주자전거라… 감도 안 왔는데, 가 보니 이건 뭐 말도 안되는 -

간단히 말해 계속 맥주 마시면서 죽어라 페달 밟는거였다. 그냥 하면 재미 없으니 Frankfurt 시내 중심가 도로 하나를 점유하면서 고성방가한다. 병신 같은데 제법 재미있다. (다같이 하니까 덜 X팔리기도 하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술도 죽어라 마시고 체력단련도 되는 아주 유익한 행사였다.

구체적인 사진들은 아래 링크에 정리해두었다.
https://picasaweb.google.com/105893372895623398843/20110923BierBikeFrankf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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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elbel의 Canon, 눈으로 듣기

Pachelbel의 ‘Canon’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하지만 비전공자가 그 악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일은 없을 듯 하다.

사실 Canon 형식 – 또는 대위법을 따르는 – 의 곡의 악보를 보면 제법 재미있다. ‘다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식의 돌림노래가 어떻게 기가 막힌 음의 조화를 이루는 지도 놀랍지만, Canon의 악보를 보면 각 성부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하나의 graphical한 패턴을 보여주는데 아주 근사하다.

아래 YouTube의 동영상을 보면 바이올린 3부와 콘티누오가 두 마디 간격으로 진행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간단해서 보기도 좋다)
점차 세밀하게 나뉘어져 가는 윗 성부의 화려함도 좋지만, 그 화려함 뒤에 4/4박자의 콘티누오가 30회 가까이 묵묵히 같은 주제를 반복하는 것이 더 흥미롭고 믿음직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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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strina, Sicut Cervus

지난 금요일 라디오(SWR2)에서 Palestrina의 ‘Missa de Beata Virgine’을 들은 뒤로 계속 르네상스 시대 음악에 꽂혀있다.

스스로를 ‘종교인’으로 분류하더라도 깊은 신앙심, 신실한 신앙생활과는 좀 거리가 있는 터라 종교음악을 들을 때에도 음악 자체에 관심이 있지 그 성격이나 배경으로 인해 큰 감흥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참된 종교는 인생과 세상의 신비를 대면하여 경외심을 느끼고 그 신비를 탐구하는 과정중에 생기는 것이다.”, “어느 한 종교가 종교적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고 말한 아브라함 헤셀의 말에 많이 공감하는 터이기도 하고.

한데, 오늘 Palestrina의 Motet ‘Sicut Cervus’을 듣고 완전히 압도되었다. 종교에 대한 수많은 갑론을박을 떠나… 이런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세상 어딘가에는 나를 사랑해주고 아끼는 신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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