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코믹스

논리학을 좋아하지 않는다 – 라기보다, 논리학이라는 학문을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시간을 투자하기도 망설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것은 순전히 ‘버트란드 러셀’이란 인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나 ‘러셀의 찻주전자’ 비유 등을 통해 항상 관심을 가졌던 인물인 반면 별로 아는 바가 없었는데, 이 책으로 많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19,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들을 일부 경험할 수 있다는 덤도 얻었고.

책의 주인공들은 ‘지도 제작자’로 비유된다.
주인공들은 혼란스러운 실재를 명확한 지도로 환원하려 했다. 즉 실재를 더 단순한 것들로 대체함으로써 논리학이 더 자연스럽게 적용되도록.

그런 면에서 일견 논리학은 매력적인 학문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책을 읽고난 후에는 어지간한 광기 없이는 엄두도 못 낼 학문으로 생각이 되었다.
현실은 복잡하기 이를데 없고 모순 덩어리인데 그런 현실에 대해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지도’를 만드려는 과정 자체가 불가능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러셀의 경우 그의 독특한 성격, 불안정성, 신경증이 그를 논리학으로 이끌었으며, 프레게, 러셀, 화이트헤드 역시 훌륭한 학자들이었지만 결국 그들 모두는 실제와 지도를 혼동했는지도 모른다고 작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 교육자로서 비트겐슈타인은 권위와 규칙을 강조한 반면 러셀은 권위에 철저히 반대했다. 하지만 그런 고집으로 그들 둘 다 현실에서 교육자로 성공하지 못했다.
논리학자의 이런 면들은 가족들 역시 불행하게 만들었는데, 러셀의 아들은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았고, 손녀는 자살했다. 힐베르트의 아들도 15살때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는데 힐베르트는 단 한 번도 아들을 그 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나로서는 그런 위대한 논리학자들에게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다.

조만간 ‘행복의 정복’을 읽을 생각인데, 러셀이 어떤 관점에서 저술하였는지 궁금하다.
현실을 배제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한다면 말 그대로 현실성 없는 공허한 글이 될 것이며, 그렇다고 논리학자로서의 본인의 색깔을 완전히 뺀 채 접근한다면 과연 그 저작이 구닥다리 자기개발서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으려나 싶어서 읽기 주저하게 된다. (그래도 책은 사놓았다)

이 책에는 러셀 말고도 많은 흥미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비트겐슈타인이었지만, 괴델 덕분에 오히려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은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의 ‘괴델,에셔,바흐’다. 이번엔 원서로 도전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