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을 이틀 앞두고

드디어 한국에 갈 날이 이틀 남았습니다.

사실 요즘 너무 한국이 그립거든요. 2008년 들어서면서 집 밖에서 한국말을 쓸 일이 거의 없었으니 그 정도가 더 심해진 듯 합니다. 비행기 트랙에서 내리면 춤이라도 출 것 같아요.
하지만, 경험상 한국에 도착하면 처음 며칠만 좋고, 그 다음에는 또 독일로 돌아오고 싶어했습니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나 할까.

한국에서의 생활과 독일에서의 생활은 각기 일장 일단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여기는 지나치게 조용하고 정적이고, 아무 것도 없는 반면, 한국, 특히 서울은 복잡하고 다이나믹하지요. 너무 정신없고.
저희 동네를 거닐거나 시내 – 한국의 작은 읍내 정도 규모입니다 – 를 돌아다니며 간간히 사람들을 보아오다가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 한국에 갔는데 강남역에서 밀려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공포까지 느낀 기억이 납니다. 속이 다 울렁거리더라구요.

여기 있으면 심심하고, 한국에 있음 너무 복잡해서 머리 아프고… 자기 처한 환경에 늘 만족하면서 사는 자세가 필요한데 그렇게 맘 먹은대로 쉽진 않습니다.

다른 장소와 환경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자주 수반되는 감정이 외로움입니다.
부모도, 친척도 없고 마음 터놓고 지낼 친구도 없는 이곳에서 외로움은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저는 그나마 괜찮은데 아내는 무척 힘들어 하더군요. 하지만 그런 이유로 한국서 사는 것이 낫다고 선뜻 이야기하기도 힘듭니다. 어떤 면에서는 군중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더 큰 법이거든요.

사회생활 10년 넘게 하면서 많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지만 그 깊이에는 의심이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불어 기존의 (상대적으로) 순수한 관계마저 많이 퇴색되어 버렸구요. 먹고 살기 바빠서, 가족이 아무래도 중요하니까 등등의 이유로 소홀해지는 것,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과 만나서 웃고 떠들어도 뒤돌아서면 공허함만 더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외로워지지요. 그런 면에서는 차라리 이렇게 타향살이 하면서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것이 나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모든 관계를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과 연락하고, 만나려하는 것이겠지요. 나이 들어 가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혼자 사는 거 – 별로 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쨌건, 이번에는 좀 길게 한국에 있을 수 있어서 좋네요.
SAP 직원으로서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년간 6주의 휴가, 그 중 3주를 쓸 생각입니다. 가자마자 독일을 다시 그리워하게 되더라도, 사람들을 만나며 더 외로워질지 몰라도, 어쨌건 지금은 기분 최고입니다.
정말 이번 주는 시간 안 가네요.

Half-Life 2

지난 부활절 휴가 때 시작, 매일 저녁 아내와 정신 없이 붙잡고 있었던 Half-Life 2.
어제 그 마지막을 하고 나니, 왠지 허탈했다.

이 게임은 정말 훌륭하다. 이런 게임을 또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될만큼.
Chan Karunamuni 란 사람은 Half-Life 전체 스토리를 깨끗하게 정리하여 웹에 올렸는데, 참 대단하다 싶다.

The Half-Life Saga Story Guide
The Half-Life Saga Story Guide (한국어)

나로서는 새로운 게임의 릴리즈, 그리고 소문 무성한 Half-Life의 영화화 소식을 목빠지게 기다리는 수밖에.

하고 싶은 일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으리라.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음에도 ‘하고 싶은 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봐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알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다시 말해 하고 싶은 일이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다만 그 일을 아직 못 찾았을 따름이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여러 가지 차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고 싶은 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큰데 반해, 하고 싶은 일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타율적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해야 할 일(또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주어지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해야 하는 일은 점점 늘어나게 돼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든 없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전에 먹고살기에 필요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에는 먹고살기에 필요한 방법들을 배워야 하고, 그 배움이 끝난 후에는 배운 것을 수단으로 먹고살기에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먹고사는 일이란 직업전선에 뛰어들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하고 싶은 일은 커녕 먹고사는 데 필요한 일을 해내는 것조차도 힘들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을 통해 먹고사는 것까지 해결할 수 있을 때가 최적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전체의 몇 퍼센트나 될까? 100명 중의 한 명이나 될까? 그 이하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험난한 세상에서 먹고살 수 있는 것만이라도 다행일 수 있다. 하루 생계비 1달러 미만을 ‘극빈자’로, 2달러 미만일 경우 ‘빈민’으로 보는 세계은행의 정의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50% 이상이 빈민이며 21%는 극빈자라고 한다.

그런데 먹고사는 일이 아무리 쉽지 않은 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에만 매달려 사는 것은 아무래도 억울한 일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어쨌든 주변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삶은 너무도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그런데 그들의 삶이 옆에서 보는 것만큼 그렇게 행복한 것인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 보려고 이것저것 생각해 보고,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쉽게 찾아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굶지 않고 먹고사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할까? 아니면 어떻게든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서 찾아야 할까? 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손쉬운 방법은 없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다시 글의 앞으로 돌아가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모두에서 태어나면서부터 하고 싶은 일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은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찾아내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은, 사실 대단히 우연적이다. 그리고 그 우연은 대체로 자신과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찾아온다. 부모, 형제, 스승, 친구, 연인 등 살아가면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고, 알아가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생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유로운 게 아니다. 내 삶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내 삶의 방향을 인도해주는 사람들인 동시에 제약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부모는 내 삶의 등불이기도 하지만, 어떤 부모 밑에서 양육되는가에 따라 나의 운명은 크게 제약받는다. 그런데 그러한 운명적 조건은 우리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조건을 떠안고 살아가야 한다. 심할 경우 그 운명적 조건은 죽는 그날까지 따라다닌다.

여기까지 동의할 수 있다면 첫번째 결론이 도출된다. 우리는 우리의 태생적 조건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제약 조건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것에 굴복한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내가 제약 조건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전에 현실을 직시하고, 일단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부러워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더러, 자칫 파멸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보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보기에’ 그런 사람일 따름이고, 그들이 하는 ‘하고 싶은 일’이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일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하고 싶은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는 과정일 따름이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의 현실을 무시한 채로 뱁새가 황새 따라가듯이 다른 사람의 하고 싶은 일을 따라하는 것은 무모할 뿐더러,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쌓아놓았던 것마저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그 ‘어떤 사람’이 대단히 부러운 사람은, 다시 한번 좀더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 ‘하고 싶은 일’이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대단히 우연적으로 선택되는 것이며, 살아가는 조건에 따라 좀더 빨리 찾을 수도 있고 좀더 늦게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나에게 주어진 현실적인 제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느냐이다. 그 노력을 하는 사람은 인생을 보다 주체적으로 살 것이고, 그 노력을 포기한 사람은 타율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 매달려 살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한 사람에게 있어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한 가지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고 싶은 일이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하고 싶은 일’이란 어떤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하고 싶은 일을 찾다가, 자신이 찾아낸 일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이란 ‘해야 할 일’을 하는 가운데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머무는 중간 정거장인 것이다.

출처: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