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의 신화, 내 마음의 옥탑방

20101221_rooftop_house먼저 ‘시지프의 신화’ 이야기부터.

카뮈의 말인즉, 인간은 결국 시지프와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인간의 한계라고 느끼는 것을 그는 ‘숙명적 부조리不條理’라 인식하고, 그 한계 내에서 최대한 노력하는 자세가 인간성 즉 자신의 실존을 찾아가는 단계라는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손을 쓸 수 없는 페스트가 만연해 있거나 끊임없이 강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는 곳이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잘못 없이도 페스트에 걸려 죽을 수도 있고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살인을 할 수도 있다.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사는 것이다. ‘페스트’의 주인공들 같이 이런 부조리에 대해 도전하고 또 스스로의 한계까지 환자들을 도움으로써 자신이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내 마음의 옥탑방’을 보자.

작가는 시지프의 신화의 인용을 통해 부조리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를 가지고 사는 것이 삶임을 강조한다.

주어진 운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반항하는 신화 속의 시지프와는 달리 ‘내 마음의 옥탑방’의 ‘나’는 거세당한 시지프다. 더 이상 운명에 저항하지 않거나 아무것도 무릅쓰지 않는다. 나에게는 이 지상의 공간 자체가 인간의 온갖 ‘미물스러움과 속물스러움’이 편재하고 있는 죽음의 장소에 다름아니다. 그런 지상에 편입되지 못하기에 ‘나’는 이 지상에서 막연히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런 시지프들에게는 신화 속 시지프처럼 “찡그린 얼굴, 바위에 부벼대는 뺨, 진흙에 덮인 돌덩이를 멈추려고 버틴 다리, 바위를 받아 안는 팔, 흙투성이의 손”이 없다. 거세된 시지프들은 시체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희망없는 도로(徒勞, 헛되이 수고함)’의 절망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이런 시지프들의 모습 자체가 바로 신들이 원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더욱이 인간들은 더 이상 가해자인 신을 멸시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멸시”에만 몰두한다는 점에서 그 불구성은 극에 달하고 있다.

반면, ‘그녀’는 인간적인 타락일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면 기꺼이 감내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보인다. 그녀는 부조리한 세계를 명확하게 의식하면서 불가능한 탈출을 꿈꾸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시지프다…

… 라고 하지만, 단지 지상의 주민이 되어 그 속물스러운 세계에 안주하는 것이 지상명제라는, 세상을 착하고 올바르게 산다는 게 아무 의미 없다고 이야기 한다면 결과적으로 ‘나’의 삶이나 그녀의 삶 간에 무슨 차이가 있을 지 모르겠다.
단지 인식하고 못하고 차이일 뿐 어떤 의미있는 목적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녀의 삶과 ‘나’의 삶은 일반 내시경과 수면 내시경의 차이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다.

너무 일상적인 것에 거대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듯 보여 읽는 와중에 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몽블랑 만년필 케이스에 153 볼펜을 넣어둔 것 같다)

나사 그리고 거짓의 역사, Aliens in the NASA Archives

얼마 전 한국에서 가져온 ‘나사, 그리고 거짓의 역사’를 맹렬하게 읽고 있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빽빽하게 채워진 글씨에 처음엔 질렸는데, 의외로 굉장히 재미있다. 은폐된 진실을 드러낸다는 저자 입장에서 꽤나 쌓였던 것이 많았겠다 싶다.

마침 YouTube에서 아주 흥미로운 동영상을 발견했다. 앞으로 읽어갈 부분들 중에 이 동영상에 이미 언급된 내용이 꽤 있을 지 모르겠다.

NASA’s Alien Anomalies caught on film – A compilation of stunning UFO footage from NASA’s archives

Aliens in the NASA Archives – More Stunning NASA UFO Anomalies Captured On Film

맞벌이의 함정 – 엘리자베스 워런,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 저

저자는 파산 가정의 대부분이 맞벌이 가정이며 그 주된 원인은 가족의 ‘안전’과 ‘교육’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자녀를 가진 중산층이 어떤 식으로 재정 파탄의 위기를 겪게 되는가 등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하지만, 그 문제점들이나 해결책이 잘 알려진 것들이고 특히 미국 내 해당되는 것이 대부분인지라 개인적으로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단 해결책의 근본 중 하나가 교육제도의 개혁에 있고 그에 대한 몇가지 방법 –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진 않았지만 – 을 제시한다는 점이 흥미로왔다. 미국 역시 교육과 집값의 함수관계가 큰 이슈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래는 그중 일부 발췌한 내용들이다.

  • 학교체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자 (좋은 학군 내) 주택에 대한 입찰경쟁이 격화되었다.
    무자녀 독신자의 83년 ~ 98년 주택가격 중앙값은 23% 상승, 그러나 유자녀 부부의 주택가격은 79% 올랐다. 이렇게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안전’과 ‘교육’ 때문이다.
  • 전형적인 중산층 아동의 학교생활 기간 중 1/3이나 그 이상을 차지하는 프리스쿨(데이케어 센터와 다름)과 대학은 가정의 부담이다.
    15개 주에서 도시지역의 보육시설에 4살짜리 아이를 보내는데 드는 연간 비용이 대학 등록금의 2배가 넘는다.
  • 신용카드 채무는 68년 오늘의 화폐가치로 100억달러 미만이었던 것이 2000년에는 6,000억달러가 넘는다. 이는 휴가와 사치품 때문이 아니다. 앞서 말한 입찰전쟁은 중산층 가정이 모기지 대금과 기타 고정비용을 지출하고 나면 소득이 거의 남지 않을 정도까지 중산층 생활 비용을 높였다. 이때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여타 이유로 신용카드 채무에 의존하는 생활이 시작되고 이것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되면 이 모든 채무를 통합해 2차 모기지 대출을 받는다.
  • 파산한 가정은 확실히 과소비를 했고, 감당할 수 없는 의료치료를 받았으며, 집세를 낼 돈이 별로 남지 않도록 자녀양육비를 지출했다. 그들은 또한 실직 후에도 자신의 주택과 차를 지키려고 하는 등 자신의 소득능력 이상으로 생활했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

꽤 구하기 힘든 책이었다만 운 좋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과는 달리, 줄거리에는 웅장한 구석이 눈꼽만치도 없다. 아마 영웅적인 베체로프스키가 ‘파미르’ 같은 곳으로 떠나면서 무언가 벌어질 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그냥 베체로프스키 외 모든 인물이 ‘절대자’에게 굴복하면서 끝난다.

왠지 싱겁다 싶지만 베체로프스키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의 세월이 있어.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10억년 동안 많은 일들이,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대목은 무척 매력적이다.

스뜨루가츠키 형제의 다른 소설 – ‘신이 된다는 것은 어려워’, ‘인간의 섬’ 등등도 읽어보고 싶은데 독일서 가능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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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밖에서

몇년전 조선일보 ‘Books’에 연재 되었던 칼럼 제목.

마침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을 읽은 참에, 지난 칼럼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밖에서’ 바로가기




음, 지금 보니 링크가 깨져있다.

조선일보 검색 페이지로 가서 ‘성밖으로’ 키워드로 검색, 듀나님의 글을 찾으면 된다. (검색결과가 그리 좋진 않지만)

— 2008/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