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이 사는 나라,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처음으로 모리스 샌닥Maurice Sendak의 동화를 딸에게 읽어주었다.

정확히 두달 전 한국서 가져오기는 했지만 표지를 본 딸이 계속 읽기를 거부했다. 당연한지도.
그러다 금요일 저녁 엉겁결에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펴들었고 책에 정신 없이 빠져든 딸아이에게 그 자리에서 다섯 번 이상 읽어주어야 했다.

내용과 그림체가 무척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구성면에 있어서 여백과 그림의 배치가 효과적이다.
현실적인 공간은 여백이 많고 그림이 작지만 환상의 세계로 갈수록 여백이 줄어들다가 괴물 소동을 벌일 때는 그림이 전 페이지를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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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에 언급되는 그림책과 비슷한 분위기의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Otfried Preußler 작품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샌닥의 다른 작품과 함께 이번에는 그의 작품 몇 개를 찾아봐야겠다.
아직은 읽기 너무 어리지만 나중에 좋아할지도.

머니볼을 읽다가

앞일을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머니볼’ 4장에 나오는 ‘빌 제임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떤 일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할 지 알게 된 것 같다.

그에 앞서 ‘빌리 빈’의 메이저리그 생활 시작과 끝에 대한 서술에서 아래와 같은 대목을 만났다.

결국 빌리 빈은 열일곱 살 이후로 줄곧 하고 싶었던 말을 마침내 꺼냈다. 그는 야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빌리는 부질없이 매달렸던 재능에 대한 미련을 마침내 던져버렸다. 그는 자신의 재능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재능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야구는 기술일 수도 있고 요령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그는 야구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왜 이 대목이 그렇게 큰 울림으로 와닿았는지 잘 모르겠다.

유년기의 끝

한동안 절판되어 볼 수 없었는데 작년 초 다시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특정 주인공이 없다. 나름 긴 시간을 훑어가며 진행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작 흥미로운 것은 ‘오버로드’의 개입, 그리고 인류의 진화와 그 끝으로 나아가는 상황에 대한 저자의 서술이다. (오버로드 ‘캐렐런’을 통해서 더 많은 의견을 보여준다)

50년대에 쓰여진 것이라고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의 상상력을 보여주며, 특히 후반부 ‘잰’이 보게 되는 ‘오버마인드’의 묘사는 압권이다. 오버로드들의 충격적인 외관에 대한 설명은 교묘하기까지 하고.
끔찍한(?) 결말에 대해 무언가 말을 덧붙이고 싶지만 – 고장원 씨가 쓴 해설에서도 이런 결말이 과연 진화의 끝인가 반문하고 있다 – 그것보다 홀로 쓸쓸히 남겨진 시간을 보내는 잰의 모습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궁극의 고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잃어버린 지평선

깊은 서정성과 박진감을 갖춘 이 책은 소설 읽는 재미를 한가득 준다. 특히 추구해야 할 이상향이란 어떤 곳인가 – 라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유토피아인 ‘샹그릴라Shangri-La’는 몇 가지 면에서 일반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이상향과는 차별화를 두고 있다.

먼저, 중용中庸이 원칙이다. 주인공 콘웨이와 장노인의 이야기를 보자.

…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우리들의 일반적인 신앙은 중용中庸에 있다고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어떠한 지나친 과도함을 피한다는 덕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인 말씀을 용서해주신다면 거기에는 덕德 그 자체의 과도함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적당한 엄격함을 가지고 지배하고 있으며, 그 대신 적당한 복종으로 만족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주민들은 적당하게 성실하고, 적당하게 겸손하고, 적당하게 정직합니다.

보석에 여러 모가 있듯이 많은 종교에는 각기 적당히 진리가 내포되어 있는 법입니다.

무엇보다, 샹그릴라에서 사는 것은 넉넉하고 풍족한 시간이 주어지지만 영원하진 않다는 것.
이들은 이상향에 있어서도 중용을 지키고 있다.

언젠가는 당신도 다른 사람같이 늙는 때가 오겠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늦게 훨씬 고귀한 상태로 들어갈 것이오. 여든 살이 되어도 젊은이의 발걸음으로 고갯길을 오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기적을 행하지는 못하오. 죽음을 정복할 수도 또 노쇠를 막을 수도 없소.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이라고 불리우는 이 짧은 막간의 속도를 늦춘다는 것 뿐.

… 무엇보다 귀중한 것은 ‘시간’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 당신들 서구의 국가들이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상실해 버리는 그 귀중한 보물 말이오. 자, 생각해 보시오. 당신은 독서의 시간을 얻는다 – 이제는 두 번 다시 시간을 아껴 급히 읽지도 않을 뿐더러 지나치게 열중한다고 한 들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니오. 당신은 음악의 취미를 가져서 악보도, 악기도, 자유로운 무한의 시간과 더불어 가장 풍부한 감상을 당신에게 주게끔 갖추어져 있소…

늘 시간에 쫓기는 나로서는, 유한하지만 충분한 양의 시간이 주어지는 이상향에 너무나 공감이 간다.

추:
주인공 콘웨이의 성격은 어딘가 무라카미 하루키 초기작품에 등장하는 ‘나’를 연상케한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는 작품이다. 내용의 상당부분이 영국 빅토리아 시대 배경이고(14세기도 나온다) 이 부분에 대한 묘사를 당시의 어법 – 수많은 인용문과 함께 – 으로 하기 때문에 번역에 심한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맛깔나게 번역을 한 역자의 노고가 돋보인다.

책은 두툼하지만 꽤 스피디있다. 내용도 꽤 재미있고 심지어 웃기는 대목도 많다. 빅토리아 시대에서의 많은 해프닝과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네드의 독백은 흡사 시트콤을 보는 듯 재치있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대체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7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 되었을까 의아하기도 했다. 조금 더 압축했음 좋았을 것 같은데.

일반적인 시간여행 이야기는 시간여행자가 역사를 바꾸려 하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리는 반면, 코니 윌리스는 역사가 스스로 무수한 편차를 교정해간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나비효과를 예로 들면, 나비의 펄럭임이 결국 일으키는 엄청난 변화 – 가 포인트가 아니라 그런 결과를 이미 알고 나비의 펄럭임을 만들어내는 ‘의도’가 있다는 것. 모든 것이 역사의 의도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주제로, 세상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비밀은 결국 극히 사소한 어떤 것이라는 것도 언급한다. 극중에 워털루 전투의 모형을 만들어 실험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결말에 가면 아래와 같은 대화가 나온다.

– 워털루 전투의 승패를 결정지은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 맞아요. 너무나 사소해서 그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는 무언가죠. 그게 바로 ‘모형’을 만드는 데의 약점이죠. 사람들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요소들만 집어넣고 모형을 만들거든요. 하지만 워털루 전투는 혼돈계라구요. ‘모든’ 것이 다 관계가 있어요.

극 흐름과 연관된 역사적 사건이나 이론들도 다양하게 언급되는데(슈레딩거의 고양이나 2차대전 이야기 등) 개인적으로 루이 16세 이야기가 꽤 흥미롭다. (P190)
배경만 우리나라로 해서 작품이 나온다면 훨씬 재미있었을텐데.

이타적 인간의 출현

세일러의 추천으로 알게 된 책. 딱딱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굉장히 흥미롭고 읽기 쉽다. 특히, 전문적이고 좀 딱딱한 내용은 책 뒤쪽의 부록 ‘게임이론 입문’으로 밀어서(그래서 그런지 별로 ‘부록’스럽지 않다) 글의 흐름이 안 끊기게 한다든가, 매 장章 새로운 내용에 앞서 기 서술된 내용들을 짧게 언급, 또는 서로 연관시켜 이해하기 쉽게 한 구성이 무척 맘에 든다. 지적만족과 읽는 즐거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딜레마나 ‘공공재 게임’ 등을 보면, 인간은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 (영화 ‘Beautiful Mind’로 잘 알려진), 즉 항상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전략을 택하게끔 되어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타적 동기에서 비롯한 행동들이 사회에 존재한다. 그것도 많이.

언뜻 심정적으로 이해는 가면서도 이론적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이타적 행위 및 강한 상호성이 어떻게 진화해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다양하고 흥미로운 실험들을 보여준다.
그런 예시나 실험 결과를 보면 ‘어, 나도 이렇게 행동할 것 같은데’ 하는 것들이 많이 나온다.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런 행동들에 공감은 하면서도 궁금해오던 차에, 이 책은 그 이유를 제법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10장 ‘앙갚음의 미학’에서 서술하고 있는 보복행위, 즉 상호적 인간Homo reciprocan 부분에 대한 설명은 무척 흥미있었다. :-)

설득의 심리학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있다가 뭔 바람이 불었는지 토요일 오후에 읽기 시작, 일요일에 다 읽어버렸다.

언급되는 사례나 예시가 좀 오래되었고 책에서 언급하는 6가지 법칙들이 직간접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들이긴 하다. 하지만 각 법칙들의 설명 끝부분에 언급하고 있는 ‘자기 방어전략’은 수시로 참고해볼만 하다. 제목만 훑으면 그냥 그런가 싶지만, 읽다보면 오호라, 하는 내용들도 꽤 많다.
개인적으로는 ‘일관성의 법칙’과 ‘사회적 증거의 법칙’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두서 없이 몇가지 정리하면,

  • 상호성의 법칙은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일단 활성화되면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쉽지않다. 호의와 술책을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호의는 감사히 받아들이고 우리가 지금 빚진 만큼 앞으로 언젠가는 빚을 갚을 때가 있을 거라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호의가 술책임이 판명되면 상황을 ‘재조명redefinition’하고 빚진다는 마음의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 일관성의 법칙은 ‘습관’이란 의미보다 조금 더 나아간, 일관적인 행동을 보이려는 경향을 말한다. 타인에 의해 악용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1) 본능적인 거부감 – 마음에서 울리는 경고음 – 을 따르며 2) 처음에 자신이 의도했던 바를 되돌아본다. 만일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고 있었다면 나는 그때 어떤 결정을 하였을까… 란 식으로.
  • 호감의 법칙의 영향력에 의해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가장 높을 때는 우리에게 어떤 요청을 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과 그의 요청에 대한 감정이 뒤섞여 혼재해 있을 때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저자는 ‘설득당하지 않는 방법’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지만 역으로, 언급된 내용을 잘 이용하여 상대방을 설득,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몰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텅 빈 레인코트

1995년에 출판된 책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최근에야 소개되었다. 급변하는 현 대상을 반영하기에 좀 오래되지 않았나 싶지만 내용을 읽으면 당시의 우려상황이 지금이라고 별로 나아진 건 없지 않구나, 하는 씁쓸함이 든다.

이 책은 역설Paradox로 인한 다양한 혼란을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시간의 역설’을 보면,

조직은 적은 수의 사람이 긴 시간 일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총경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노동자들은 더 많은 액수의 임금을 원한다. 이로 인해 노동과 소비 사이에 은밀한 고리가 생겨난다. 사람들이 소비를 통해 만족감을 얻고 심지어 삶의 의미까지 찾으면서 점점 더 소비를 추구하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사람들은 향상된 생산성으로 인한 혜택을 시간이 아닌 돈으로 돌려받자고 작심한 듯 하다. 노동과 소비는 일종의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일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영국의 경우 수백만 가구가 시간외 근무나 부업으로 겨우겨우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겨우겨우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놓는다.

‘정의의 역설’ 부분도 흥미로운데,

자본주의는, 가장 성공한 사람이 가장 많이 가져야 한다는 분배정의의 첫번째 정의定義에는 비교적 충실하다. 그렇다고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반대 주장을 무시하면 신뢰를 잃고 내쳐질 것이다.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근본 원칙으로 한다. 나보다 잘하는 누군가가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민주사회에서는 구성원의 대다수가 ‘남보다 잘하는 불평등’을 꿈꿀 동등한 기회를 가질 때만 장기적으로 그런 정의가 용인된다.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역설이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은 점점 더 심화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균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3가지 원리로 1. 시그모이드 곡선, 2. 도넛 원리, 3. 중국식 계약을 언급하는데, 우선 시그모이드 곡선이란 삶을 시그모이드 곡선에 비유하여 하향곡선 부분에 이르기 전 새로운 곡선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도넛 원리는, 우리의 일은 반드시 해야하는 핵심과, 우리가 나름의 변화를 시도하고 의무라는 틀을 넘어 온전히 잠재력을 발휘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영역, 이 두가지가 있고 이 둘의 균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중국식 계약이란 다른 의미로 ‘타협’을 말하는 것이다. 아래 본문을 보면,

혼란의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딜레마의 대부분은 옳고 그름을 가리기가 간단치 않다. 타협은 약함의 표출인 그런 딜레마가 아니라, 옳은 것과 옳은 것이 충돌하는 훨씬 복잡한 딜레마들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일에 많은 시간을 쏟으면서 동시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거나, 공동체의 훌륭한 구성원 노릇을 하면서 동시에 상당한 이익도 내고 싶다거나, 아랫사람들을 믿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이 하는 일을 파악해야 한다거나 집단과 집단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라면 타협 없이는 아무런 진전이 있을 수 없다. 양쪽 모두 양보를 거부함으로써 정체가 불가피하다.

결국 이 책은 내가 늘 고민해오는 ‘균형 맞추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더라도 줄 쳐가며 읽을 많은 좋은 글귀들이 있다.

만들어진 신

대학 시절 종교 때문에 방황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한 은사님이 하신 말씀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종교가 없는 것보다 당신을 더 행복하게 하더라는 것이었다. 깊게 와 닿은 말씀이었기 때문에, 이 후 종교에 회의가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또는 다른 이에게 그런 식의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도킨스는 버나드 쇼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자가 회의주의자보다 더 행복하다는 사실은 술 취한 사람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사실만큼이나 말이 안된다.

앞뒤 없이 이런 말만 듣게 된다면 그냥 냉소 정도로 치부하겠지만 이 책은 냉소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오히려 열정 – 신이 없다는 신념에 대한 – 이 가득하다.

이 책은 설득력이 있다. 한 명의 과학자로서 본인이 납득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남도 납득시킬 수 있는 사실과 증거에 기반하여 일관성 있게 논의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특히 와 닿는 것은 저자의 진정眞情이다. 미신이나 신화적, 또는 문학적 가치 이상을 부여하지 않는 종교에 대해 냉소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해악을 지적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오라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런 열정 때문에 ‘증거에 대한 과학자의 믿음 자체가 근본주의 신앙’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 역시 그의 글에 언급되어 있다.

아마 과학자들은 ‘진리’라는 것의 의미를 어떤 추상적인 방식으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근본주의자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한다. 내가 뉴질랜드가 남반구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때 근본주의자가 아니듯이 진화가 사실이라고 말할 때에도 나는 근본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는 증거가 진화를 뒷받침하기 때문에 진화를 믿으며, 그것을 반증하는 새 증거가 나오면 단번에 그것을 버릴 것이다. 진짜 근본주의자라면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근본주의와 열정을 혼동하기가 아주 쉽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논리와 숱한 인용들, 인터뷰 등이 빽빽하다. 쉽게 읽히는 초반부와는 달리 중반부는 진도 나가기 조금 힘들었는데, 그래도 후반부, 특히 7장 ‘선한 책과 변화하는 시대정신’, 그리고 8장 ‘내가 종교에 적대적인 이유’는 굉장히 박진감 있다.
성서에 대한 비판의 경우, 상당히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은 있지만 침소봉대針小棒大 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듯하다. 잔가지를 보지 말고 성서의 중심된 내용을 보라는. 물론 저자는 그에 대한 반박도 하고 있다.

이런 좋은 원리들 중 일부는 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경전 속에는 올바른 사람이라면 따르고 싶어 하지 않을,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소개된다. 그리고 경전은 좋은 원리들과 나쁜 원리들을 구분하는 규칙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8장과 9장을 읽을 때는 문득 ‘까라마조프의 형제’의 이반이 생각이 났다. 알료사와의 대화 – 영원한 조화의 대가가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 나는 그 입장료를 지불할 수가 없다고 한 – 에서 조화의 대가를 설명할 때 아이들의 비극을 예로 들었기 때문일 듯 하다. 도킨스는 보다 현실적인 입장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이 말은 이슬람교뿐 아니라 기독교에도 적용된다) 진정으로 유해한 것은 신앙 자체가 미덕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행위다. 신앙은 그 어떤 정당화도 요구하지 않고 어떤 논증에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악이다. 의문을 품지 않는 신앙이 미덕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 – 획득하기 어렵지 않은 다른 요소들을 고려할 때 – 을 미래의 성전이나 십자군 전쟁을 위한 치명적인 무기로 자라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특히 9장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 편에 나오는, ‘여호수아서’에 나온 예리코의 전투에 대해 이스라엘 어린이 1000여명을 대상으로 직접 반응을 알아본 자료는 무척 섬뜩하다. 아이들에게 대량 학살을 비난하거나 용납하게 하는 등 견해 차이를 빚어내는 것이 바로 종교이기 때문이다.

20110212_god_delusion그가 기독교/카톨릭 신앙이 지배적인 곳에서 계속 살아가고 활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노작勞作은 놀랍다. 그는 안정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과학자로서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무신론자임을 알리며 종교가 사회에 끼치고 있는 해악을 열의를 가지고 고발하고 있다. 무척 존경스럽다.

이런 저런 이유로 두 번이나 책을 놓았다가 최근에야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도중 이 책의 출간 전 ‘Channel 4’에서 방영했던 ‘The Root of All Evil?‘을 보았다. (책에서 이 다큐멘터리의 많은 부분을 보다 상세히 만날 수 있다)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면 책을 읽는데 많이 도움이 될 듯 하다.

다음 번에는 자주 인용되는 버트런드 러셀 – p83에 나오는 찻주전자 우화는 아주 흥미롭다 – 의 글을 읽어 볼 생각.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

재테크를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이지만 그와는 별도로 이 책은 매우 구성이 짜임새 있고 일관성이 있다. 보통 이런 류의 책은 적잖은 집중력을 요하는데 덕분에 쉽게 사고의 흐트러짐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또다른 이 책의 미덕은 흥미로운 예시와 은유, 그리고 유머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예를 들면 국채를 설명할 때,

두 사람이 구형 자동차의 부품을 찾기 위해 폐차장에 갔다. 폐차장은 매우 컸고, 폐차장 주인은 두 사람에게 직접 돌아다니면서 원하는 부품을 찾아보라고 했다. 동시에 폐차장 주인은 그의 애완용 염소를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두 사람은 돌아다니다가 땅에 있는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 무심코 그 구멍에 돌을 차 넣었는데 놀랍게도 돌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자동차 부품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점점 더 큰 물체들을 그 구멍에 던져 넣었지만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자동차 트랜스미션을 던져 넣었는데, 잠시후 염소 한 마리가 달려오더니 그 구멍 옆에 섰다. 그리고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놀라서 폐차장 주인에게 돌아가, 물건을 구멍에 던졌다는 이야기는 빼고 염소가 그 구멍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만 했다. 폐차장 주인은 “이상하네요. 내 염소는 자동차 트랜스미션에 단단히 묶여있을 텐데요.” 하고 말했다.

채권에 있어서 국채는 자동차 트랜스미션이고 다른 모든 채권은 염소다. 만약 국채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다른 모든 채권의 가치도 떨어진다.

흥미로운 책 제목의 일부 ‘도마뱀의 뇌’는 실제로 도마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덜 인지되고, 덜 추상적인 정신 영역에 대한 함축적인 표현이다. 이 도마뱀의 뇌의 효과는 때로는 중립적이기도 하고, 정확한 해결책을 주기도 하며,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게도 하는데, 이 각각의 효과는 어떠한 환경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불행히도, 금융시장은 도마뱀의 뇌가 최악의 결정을 내리게 하는 범주에 속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20110129_lizard_brains저질러지기 쉬운 저질판단을 피하기 위해 저자는 책의 말미에 8가지 법칙을 제시하는데 그 대부분은 – 예상하다시피 – 이미 잘 알려진 것들이다. 단지 객관적이고 알아듣기 쉬운 저자의 말솜씨 때문에 같은 말이라도 꽤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중 몇가지는,

  • 도마뱀의 뇌는 손실에 직면하면 더욱 비합리적으로 기승을 부린다. 손해를 보고 있는 주식들을 더 구입하지 마라. 평균단가를 올리는 경우에만 투자를 늘려라.
  • 정기 정액의 형태로 주식을 구입하지 마라. (이 규칙은 상기 규칙과 일맥상통한다. 즉 주식 시장이 하락세에 있지 않다는 비밀정보를 갖고 있지 않으면 이는 손해보고 있는 주식의 평균 단가를 낮추는 어리석은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 투자 결정 시간에만 금융 관련 뉴스를 들어라.

등등.

하지만 상기 규칙들 보다는 P296에 나오는 “주식 매도의 윈-윈 형태는 비합리적 형태를 띤다”란 단락이 지금 나에게는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