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사회

이 책은 왜 우리 사회가 충동적이고 근시안적이 되었나에 대한 다양한 통찰을 준다.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요즘 트럼프 대통령 취임후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지금이 바로 이 책을 읽기 적절한 시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먼저 1부에서는 왜 현대는 심각할 정도로 나 중심의 사회로 바뀌게 되었는지, 그리고 시장은 그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애플, 구글 등 개인용 첨단장비를 제공하는 업체들 대부분이 실제로 파는 것은 일종의 ‘생산성’, 즉 최소한의 노력으로 순간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이 생산성은 애덤 스미스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생산성 – 기아와 빈곤을 해결하고 효용의 극대화를 통해 생존 능력을 높여준 것들 – 이 아니라, 개인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기제機制이다.
우리는 매번 생산성이 높아지기를 기대하며 새롭게 출시되는 제품을 빠르게 낚아챈다.
충동 사회의 핵심에 놓인 것은, 언제 어디서든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려는 이런 자동 반사적 행동이다.

이런 일련의 개인 욕망 추구는 소비자 경제가 점점 득세하면서 심화되기 시작한다.
한 세기 전에는 대다수 경제활동이 우리 ‘외부’의 삶에서, 즉 물리적인 ‘생산’의 세계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물건을 만들었고, 농사를 지었으며, 어느 정도 수량 예측이 가능한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었다.
지금은 정반대로, 우리의 경제규모는 엄청나게 커졌지만 대다수 경제활동은 ‘소비’ 영역에 집중돼있다. (미국의 경우 70%) 이러한 소비활동은 상당부분 자의적이어서, 필요가 아닌 우리 내부의 열망과 바람, 정체성과 은밀한 갈망, 불안과 지루함이 소비를 끌어내게 된다.
시장은 점점 이런 자아와 통합을 이루게 되는데, 포화 상태의 산업자본주의 경제에서 모든 생산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은 자아의 끝없는 욕망뿐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줄기차게 생산하면서 우리는 자아 표출이라는 힘에 상당히 다가설 수 있게 되었는데, 저자는 이러한 통합이 궁극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자아발견 및 정체성 탐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에만 너무 몰두하면서 ‘장기적인 사회적 필요’는 충족시키기 힘들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젠 사회적 목표나 책임감 같은 것은 제거하거나 최소화해야할 ‘비효율’로 본다. 당장의 이득에 비해 미래의 가치가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손익에 집착하는 추세는 우리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유례없는 기업 이익을 거두게 된 이유를 설명해준다. 동시에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유례없는 불안에 떠는 이유 역시 설명해준다.

즉 저자는 효율성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성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
‘언제나’ 최저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믿음은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재의 문화는 자아탐닉과 몰두를 어떤 치료가 필요한 인격적 결함으로 여기기는 커녕 하나의 라이프스타일과 ‘제품군’으로 칭송하고 정당화하고 있다.

2부 ‘깨진 거울’에서는 앞서 언급한 개인화의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룬다.

5장 ‘나홀로 집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공동체를 발견하기 쉬워지고 끼리끼리 모이면서 나라 전체의 사회적 결속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이는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지게 된다.

민주적 문화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계획에 없던 만남’에서 생기는 혼란과 어색함이 필요하다. 이런 만남에서 시민들은 ‘사전에 택하지 않은 것들 그리고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껄끄러운 주제 및 견해에 노출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앞서 살핀 대로 계획에 없던 만남, 예기치 않은 생각들, 거슬리는 사람들은 우리가 맞춤식 삶과 경험에서 점점 걸러 내려는 대상들이다.


과거 미국인은 각자의 차이에 대처하는 법을 알았고 그러한 행동으로 공동체와 사회가 제 역할을 하고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공통분모를 지켰다. 그렇지만 지금은 의견을 수용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자아 표출 욕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본다. 그저 나와 성향이 같은 사람들과 소통하거나, 내 생각과 맞는 아이디어나 관점을 고민하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긴다.
그렇지만 이는 해로운 습관이다. 일단 현실 세계든 가상 세계든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개별화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구성원의 생각이 비슷한 공동체는 더욱 극단적 성향을 띠면서 반대 의견을 잘 수용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소비자 경제에서 개인의 힘이 점점 커지게 되면 ‘동료와의 연대’조차도 딱히 유용하다고 보지 않게 된다.
이런 자기중심적 문화에 익숙한 시민들이 그림이나 시, 책을 접할 때 맨 먼저 던지는 질문은 ‘이 작품은 훌륭한가 저속한가’가 아니라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이다.

6장 ‘노동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매우 심각해지고 있는 고용 환경을 다루며, 7장 ‘질병으로 치료되는 사회’는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설명해준다.
몇가지를 옮겨보면,

… 오바마케어는 1980년대에 사라져야 했던 뉴딜식 경제 관리 정책으로 복귀하기 위한 수십 년 만의 첫 시도였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는 오바마케어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더 큰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개인을 희생한다는 소중한 관념을 다시 평가해야 했다. 일각에서는 자기중심적 이데올로기와 과민 반응하는 소비자 경제에 수십 년간 길들여진 결과, 희생적이지 못한 개인이 사회정의 실현에 결정적 장애가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현재 미국 의료 제도의 경제적 기여를 평가할 때 치료 결과가 아닌 치료 행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소위 ‘질병이 주도하는 경기회복’이라는 황당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경기를 자극하려면 사람이 아파야 하고 그래야 경기가 나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비관적이고 절박한 상황에 대항하여 저자는 몇가지 제안을 하게 되는데, 그 핵심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몇가지 방안으로,

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
정부는 사회적/정치적 우선순위에 따라 경제의 사회적 산물을 이동시킬 수 있는 수단(조세, 보조금, 규제 등)을 갖추고 있다.
지난 40년 간 우리는 시장의 결정에 맡김으로써 갈수록 단기적이고 부당하며 지속 불가능한 결과를 선호하는 부패한 시장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하며, 이와 동시에 근본적으로 경제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경제적 우선순위와 그 가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시장과 거리 두기
우리는 제조업을 키우고 금융업을 줄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금융 부문의 비대화가 낳는 실질적인 위험은 경제 변동성 같은 것이 아니라 금융 부문의 사고방식이 문화 전반에 침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의 대형 투자자들은 각종 대인관계 서적에서 경고하는 성품을 모두 갖췄다. 바로 충동적이고 단기적이며 헌신성이 전혀 없는 모습이다.
그런 금융이 노동시장과 경제에 과도한 영향을 주는 현실에서 우리는 만사를 시장에 맡기면 안된다.

직원 교육을 강화하고 은행을 쪼개기
노동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다. 유럽처럼 직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이 모든 폐해의 중심에 있는 대마불사 은행들을 규제 가능한 더 작은 단위로 쪼개야 한다.

그밖에, 브랜드 정치를 지양止揚 하기, 끊임 없이 충동 사회의 패턴과 가치관을 밀어내고 내면의 소리를 듣기를 주장하며, 단기성과 이기심에서 벗어난 현실을 고려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기를 강하게 권유하고 있다.

20170312_the_impulse_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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