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 인터뷰 기사에서

김영하 작가 인터뷰 기사를 꽤 재미있게 읽었다.

‘연결’을 생각한다 – 산문집 <보다> <말하다> <읽다> 연작 출간한 소설가 김영하를 만나다

특히 ‘작가’에 대해 말한 부분은 맘에 들어서 아래 옮긴다.

‘펜이 아닌 주먹을 쥔 작가’라는 수식도 따랐죠. 현실참여형 작가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지는 않나요.

—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일종의 ‘공(公)생활’이 된 것. 그런데 이제 작가에 대한 정의를 바꾸고 있어요. 옛날에는 작가란 ‘소설을 생산하는 사람’이었죠. 자동차 만드는 사람, 요리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요. 그런데 이런 직업의 정의는 20세기 것이에요. 무얼 만드는 사람이냐의 기준으로 직업을 분류한 거죠. 요즘은 좀 달라요. 소설가는 소설을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학적 경험을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정의를 하면 할 수 있는 역할이 늘어나요. 소설 쓰는 일도 하지만 강연도 할 수 있고 낭독도 가능한 거죠. 팟캐스트를 진행해 귀로 듣는 소설을 경험하게 한다든가, 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이런 일의 일환이고요. 이런 활동을 주저하는 작가들도 여전히 있는데 전 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들이 골방에서 원고 쓰고 출판사에 책 보내면 출간되는 시절은 모든 게 잘 돌아가던 시절이었죠. 이번에 <읽다>를 쓰면서 문학사를 정리하는 글을 쓰다보니 예전 작가들의 형태가 새삼 와닿더라고요. 셰익스피어도 극장주라 장부 들고 손익을 따졌어요. 그러면서 글도 쓴 거고요.

문학과 소설가의 정의가 이제 더 포괄적인 시대가 된 거군요.

— 문학이라고 생각한 것만 문학이 아니고 문학적인 것도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문학적인 것을 발견하는 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 같아요. 동시에 읽기나 독서도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서 캠페인이 있지만 지식을 가져오기 위한 수단이 앞서죠. 저는 그런 정의가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책 속에 길이 있다거나 책은 마음의 양식이다 같은 지식의 저장 수단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위한 독서, 정신적 모험을 위한 독서 등 다양한 방식이 필요하다고 봐요. 사실 지식을 주는 수단이 지금은 인터넷으로 넘어갔으니, 오히려 독서는 더 다양한 지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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