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잔의 차, 무슬림의 반테러 노력에 대한 기사

지금 읽고 있는 ‘세 잔의 차’의 주인공 그레그 모텐슨은 90년대 중반부터 히말라야 오지 및 시골마을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데 헌신하는 사람이다.

파키스탄, 북인도, 아프가니스탄 지역이 주 활동지인지라 다양한 무슬림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고국(미국)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에도 주력하는데, 그 가장 큰 계기는 9.11 이다.

책에 보면 시아파 종교 지도자인 사이드 아바스가 9.11 직후 초등학교 개교식 연설에서, 자기네 대부분은 테러범이 아니라 선량하고 소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강하게 언급하는데, 이에 대해 그레그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 사이드 아바스가 말을 마쳤을 즈음에는 모두가 울고 있었습니다. ‘이슬람’과 ‘테러범’이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그날 그곳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슬람의 진정한 핵심은 정의와 관용, 사람입니다.”

유럽지역에 거주하면서 많은 무슬림을 만나지는 못했더라도, 내가 만난 이들은 모두 멀쩡한, 오히려 보통 이상으로 차분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언론의 편파 보도를 보다 보면 수억명의 이슬람교도들이 모두 잠재적인 테러범인양 비추어지기도 하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다.
누구를 바보로 아나.

이런 편파성에는 넌더리가 나던 참에 단비 같은 기사를 읽었다.

왜 주요 언론들은 무슬림의 반테러 노력을 보도하지 않는가


비평가나 언론이 “왜 무슬림들은 테러에 대응을 안 하나?”라고 묻지만 사실 성하 칼리파는 그들이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비평가들을 비롯한 다른 단체들은 칼리파가 10년 넘게 칼리파 역할을 하며 외쳐온 반테러 목소리를 무시해왔다. 반면 IS의 리더 알 바그다디가 이슬람과 폭력에 대해 근거 없이 말한 한마디에 지난 6개월 동안 하루종일 뉴스 보도가 이어졌었다.

이러한 이중잣대는 정말로 지겹다.

혹시 내가 이제까지 잘못 생각했던 것일까? 무슬림의 외침을 주요 언론과 비평가들이 못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위협적이거나 독설적일 때’만 들리는 것일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이타심, 연민, 사랑, 관용, 다원성 같은 긍정의 내용은 무시되는 것이다.

평화를 지향하는 무슬림은 IS만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비평가와 언론의 존재를 위협한다.

상기 번역된 기사보다는 원문 쪽에 훨씬 많은 피드백이 걸려있다.
이 피드백들 역시 많은 생각의 여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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