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로 음악 듣기

얼마전 ‘Vinyl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란 글을 허핑턴포스트에서 읽었다.
근래 음악을 들으며 늘 무언가 아쉬웠는데, 바로 그것을 정확히 짚어주는 글이다. 아래는 그 일부.

… 음원과 스트리밍의 전성시대, 그 한복판에서 음악이라는 예술이 주는 궁극적인 감흥이란 폴더 안에 가득한 파일이나 음악 앱의 클릭 버튼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체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음악에 매혹되는 첫 순간으로부터 시작해 물성을 지닌 음반을 구매하고 싶다는 욕구, 매장에 찾아가 직접 음반을 고르고 비교하는 행위, 음반을 손에 쥐고 집에 돌아와 비닐을 벗기고 부클릿을 읽으며 음악을 듣는, 이 모든 경험과 과정의 종합이야말로 음악과 진정으로 마주하는 짜릿한 ‘의식’임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새롭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찾은, 그 감흥 말이다.

디지털 파일이 주는 극단의 편리함이 누적된 끝에 결국 물성을 동반한 불편함이 다시 각광받는 이 현상은 작용과 반작용, 혹은 시대는 돌고 돈다 따위의 말을 떠올리게 하다가 결국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수만 개의 음원으로도 채워지지 않던 나의 음악적 허기는 이제 디지털인지 아날로그인지 모호한 시디 따위로도 채워지지 않는 대신, 그보다 훨씬 크고 구식인 바이닐을 턴테이블에 눕히고 애써 바늘을 올려 빨리 감거나 스킵을 할 수 없는 불편한 상황을 스스로 만든 다음에야 비로소 채워진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덕분에 Mischa Maisky 연주, Bach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오랜만에 LP로 감상할 생각이 들었다.

음, 사실 이 연주는 상기한 글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LP로 듣는 본 연주의 질감과 느낌은 CD로 재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