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지평선

깊은 서정성과 박진감을 갖춘 이 책은 소설 읽는 재미를 한가득 준다. 특히 추구해야 할 이상향이란 어떤 곳인가 – 라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유토피아인 ‘샹그릴라Shangri-La’는 몇 가지 면에서 일반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이상향과는 차별화를 두고 있다.

먼저, 중용中庸이 원칙이다. 주인공 콘웨이와 장노인의 이야기를 보자.

…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우리들의 일반적인 신앙은 중용中庸에 있다고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어떠한 지나친 과도함을 피한다는 덕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인 말씀을 용서해주신다면 거기에는 덕德 그 자체의 과도함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적당한 엄격함을 가지고 지배하고 있으며, 그 대신 적당한 복종으로 만족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주민들은 적당하게 성실하고, 적당하게 겸손하고, 적당하게 정직합니다.

보석에 여러 모가 있듯이 많은 종교에는 각기 적당히 진리가 내포되어 있는 법입니다.

무엇보다, 샹그릴라에서 사는 것은 넉넉하고 풍족한 시간이 주어지지만 영원하진 않다는 것.
이들은 이상향에 있어서도 중용을 지키고 있다.

언젠가는 당신도 다른 사람같이 늙는 때가 오겠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늦게 훨씬 고귀한 상태로 들어갈 것이오. 여든 살이 되어도 젊은이의 발걸음으로 고갯길을 오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기적을 행하지는 못하오. 죽음을 정복할 수도 또 노쇠를 막을 수도 없소.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이라고 불리우는 이 짧은 막간의 속도를 늦춘다는 것 뿐.

… 무엇보다 귀중한 것은 ‘시간’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 당신들 서구의 국가들이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상실해 버리는 그 귀중한 보물 말이오. 자, 생각해 보시오. 당신은 독서의 시간을 얻는다 – 이제는 두 번 다시 시간을 아껴 급히 읽지도 않을 뿐더러 지나치게 열중한다고 한 들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니오. 당신은 음악의 취미를 가져서 악보도, 악기도, 자유로운 무한의 시간과 더불어 가장 풍부한 감상을 당신에게 주게끔 갖추어져 있소…

늘 시간에 쫓기는 나로서는, 유한하지만 충분한 양의 시간이 주어지는 이상향에 너무나 공감이 간다.

추:
주인공 콘웨이의 성격은 어딘가 무라카미 하루키 초기작품에 등장하는 ‘나’를 연상케한다.

Guylian ‘La Trufflina’

몇해전 롯데제과에서 인수해서 작은 화제가 되었던 길리안Guylian. 씨쉘Sea Shells이 유명한데, 늘 그랬지만 이거 맛있는 것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얼마전 팀 워크샵에서 선물로 길리안의 ‘La Trufflina’을 받았는데 오, 이건 매우 훌륭하다. 아마존에 가서 보니 가격도 착하고.
몇 개 주문해서 쟁여놔야겠다.

꽃다발

꽃다발을 받았다.

회사에서 보낸 것인데, 꽤 크다. 꽃송이도 굵고.
아기자기한 맛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깔끔하게 다듬고 묶어 솜씨 좋게 배치해놓았다. 마치 시원시원한 붓놀림으로 순식간에 그려낸 풍경화 같다. 독일인답다는 생각도 든다.

전화를 받고 아래 층에 내려가니 문 밖에 꽃배달을 온 거구의 독일인이 있었다. (직원카드가 없으면 건물 내 들어올 수 없다)
행색은 추레했으나 몸집에 어울릴 정도로 큰 함박웃음을 짓고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사내를 보니 웃음이 슬그머니 나왔다. 그 사내의 웃음도 꽃다발 만큼이나 보기 좋다.

꽃을 아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던 일에서 잠시 눈을 떼어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여유’를 준다는 점은 맘에 든다.
며칠은 눈과 코가 작은 호사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