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ora Borealis

오래전부터 오로라를 직접 보고 싶었다. 스웨덴 북부나 캐나다의 Yellowknife 같은 곳 – 12월엔 영하40도 이하로도 떨어진다. 카메라 셔터나 닫히려나 – 에나 가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Kristjan Unnar Kristjansson(a.k.a. Kiddi)란 아이슬랜드 포토그래퍼가 레이캬비크 외곽에서 끝내주는 사진들을 찍었다.

그의 오로라 사진들은 여기서 볼 수 있다. (링크로 이동 후 큰 사진 클릭)

레이캬비크 정도면 가볼만하다.
이 친구가 쓰는 오두막 같은 건 없지만 뭐, 사진보다는 직접 내 눈으로 북극광을 보고 즐기고싶다. 때만 잘 맞추면… No matter where i go, there they are!.

애보기

간만에 휴가를 얻어 전업주부 생활을 하고 있다.
청소하고 요리하고 빨래하는 거야 이미 손에 익어 일도 아니지만, 애 보는 거 – 이건 정말 쉽지 않다. 기억에, 군대 유격훈련이 이거보다 조금 더 힘들었던 것 같은데.

하나 좋은 점은 베이비로 매일 근력운동을 하다보니 팔에 근육이 붙는다는 것이다. 아령으로 백날해도 안되더니만. 무게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서 덤벨처럼 웨이트 디스크를 교체할 필요도 없다.

어쨌건, 밤만 되면 탈진한다.
night shift 해주는 아내가 그냥 고마울 뿐이다.

여자애 하나 건사하기도 이리 힘드니 예전 국민학교 친구가 종종 생각난다. 그녀는 쌍둥이 남자애 엄마다. 지금 만나면 샘솟는 존경심에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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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제연어를 곁들인 감자 샐러드

20101219_potato_salad_salmon지난번 Gavin이 알려준 ‘Potato Salad with Smoked Salmon’을 다시 해먹었다. 지난 번에는 약간 모자랐던 터라 이번에는 감자를 충분히 했다.

이 요리, 참 맘에 든다. 거의 손이 가지 않으면서 맛은 매우 훌륭하다. 노력 대비 성과 측면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요리법은 제이미 올리버 것을 참조하면 된다. 이 양반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은데 실상 조리법 자체는 별 거 없다. (서너줄이나 되나) 현미식초와 발사믹식초를 같이 써보니 내 입맛에 조금 더 나았다. Meerrettich(horseradish)랑 훈제연어의 궁합이 환상이라서 믹스하지 않고 따로 접시에 몇 숟가락 담아서 찍어 먹긴 했고.

조리법에 특별한 사항이 없으니만큼 재료는 좋아야 한다. 훈제 연어도 좋은 것을 써야 하지만 사실 감자의 맛이 가장 중요하다. 몇 안 되는 독일의 좋은 것 중 하나가 감자인지라 재료 구하는데는 별 문제 없었다.

일부 재료는 영어와 독어 표기법이 틀리기 때문에 사진을 같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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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의 신화, 내 마음의 옥탑방

20101221_rooftop_house먼저 ‘시지프의 신화’ 이야기부터.

카뮈의 말인즉, 인간은 결국 시지프와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인간의 한계라고 느끼는 것을 그는 ‘숙명적 부조리不條理’라 인식하고, 그 한계 내에서 최대한 노력하는 자세가 인간성 즉 자신의 실존을 찾아가는 단계라는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손을 쓸 수 없는 페스트가 만연해 있거나 끊임없이 강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는 곳이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잘못 없이도 페스트에 걸려 죽을 수도 있고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살인을 할 수도 있다.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사는 것이다. ‘페스트’의 주인공들 같이 이런 부조리에 대해 도전하고 또 스스로의 한계까지 환자들을 도움으로써 자신이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내 마음의 옥탑방’을 보자.

작가는 시지프의 신화의 인용을 통해 부조리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를 가지고 사는 것이 삶임을 강조한다.

주어진 운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반항하는 신화 속의 시지프와는 달리 ‘내 마음의 옥탑방’의 ‘나’는 거세당한 시지프다. 더 이상 운명에 저항하지 않거나 아무것도 무릅쓰지 않는다. 나에게는 이 지상의 공간 자체가 인간의 온갖 ‘미물스러움과 속물스러움’이 편재하고 있는 죽음의 장소에 다름아니다. 그런 지상에 편입되지 못하기에 ‘나’는 이 지상에서 막연히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런 시지프들에게는 신화 속 시지프처럼 “찡그린 얼굴, 바위에 부벼대는 뺨, 진흙에 덮인 돌덩이를 멈추려고 버틴 다리, 바위를 받아 안는 팔, 흙투성이의 손”이 없다. 거세된 시지프들은 시체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희망없는 도로(徒勞, 헛되이 수고함)’의 절망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이런 시지프들의 모습 자체가 바로 신들이 원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더욱이 인간들은 더 이상 가해자인 신을 멸시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멸시”에만 몰두한다는 점에서 그 불구성은 극에 달하고 있다.

반면, ‘그녀’는 인간적인 타락일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면 기꺼이 감내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보인다. 그녀는 부조리한 세계를 명확하게 의식하면서 불가능한 탈출을 꿈꾸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시지프다…

… 라고 하지만, 단지 지상의 주민이 되어 그 속물스러운 세계에 안주하는 것이 지상명제라는, 세상을 착하고 올바르게 산다는 게 아무 의미 없다고 이야기 한다면 결과적으로 ‘나’의 삶이나 그녀의 삶 간에 무슨 차이가 있을 지 모르겠다.
단지 인식하고 못하고 차이일 뿐 어떤 의미있는 목적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녀의 삶과 ‘나’의 삶은 일반 내시경과 수면 내시경의 차이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다.

너무 일상적인 것에 거대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듯 보여 읽는 와중에 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몽블랑 만년필 케이스에 153 볼펜을 넣어둔 것 같다)

Kinderkrippe

아침에 집 근처에 있는 Kinderkrippe를 방문했다. 몇 달 뒤 아이를 맡길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미 아내가 이곳 저곳 알아보고 있는 터였다.

이 근처 역시 아이에 비해 Kinderkrippe / Kindergarten의 수가 부족한 탓에 아니나 다를까, 일단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는 수 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대기자 우선순위를 정하는 규칙인데 최우선이 학대받는 아이라는 것. 물론 부모가 아닌 ‘기관’에서 요청을 하게 되고, 이 경우 우선적으로 아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여태 그런 일은 없었다지만, 문득 제대로 된 시스템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Giardino in Heidelberg

아내 생일이라 외식을 하기로 하고 Rohrbacher str. 에 있는 ‘Giardino’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다.

아는 동생 결혼식 뒷풀이 때 여기서 먹었던 spaghetti vongole가 너무 맛났던 터라 다시 주문할까 했지만 급 매콤한 것이 땡겨서 penne arrabbiata를, 아내는 추천 메인요리 중 해산물 요리를 시켰다.

arrabbiata도 무척 맛깔났지만, 직전에 먹은 야채스프와 부드러운 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부드럽게 익은 다양한 야채 덩어리들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루는 따뜻한 맛에 뱃 속 뿐 아니라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내가 주문한 해산물 요리 역시 매우 훌륭했지만, 차가운 음식이라서 오늘 같이 추운 날에는 조금 덜 매력적이지 싶었다.

구글링을 해보니 나만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기를 안 가져간 것이 무척 아쉽다.

추: 하이델베르그 맛집을 정리해놓은 페이지가 있어 링크를 건다. 여기 소개된 곳 말고도 맛집이 많지만 제법 유명한 곳은 훑어놓은 듯.

Insanity

Insanity is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but expecting different results.

예전 빌 클린턴의 연설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 경구警句는 출처가 정확하진 않다. 아인쉬타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지만 벤자민 프랭클린이라고도 하고. (Wikiquote)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 종종 ‘이런, 또 똑같은 짓 하고 있네’ 하곤 한다. 하지만 IT 일을 하며 특히 공감할 때가 잦다.
미친 짓 자꾸 하지 말자.

관심과 확신

‘소설 파는 남자’를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재밌는 점은 에이전트 바닥에선 에이전트가 한 작가나 작품에 대한 관심과 확신만 가지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이미 절반은 성공이다. 그 확신이 제공하는 동력이야말로 결실을 이루는 확실한 밑천이기 때문이다.

문학 에이전트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내가 만든 것, 또는 팔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